티스토리 뷰

#젊은작가상 #강화길 #최은영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 #신촌저녁독서모임

 

*읽은 뒤 기록하고 싶은 구절과 감상을 적습니다. 책에 대한 설명은 두서가 없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짧은 소설을 쓰고 싶다고 했다. 그러더니 바로 실천에 나서 온라인 소설쓰기 수업을 끊었다. 알게모르게 머릿속에 그려둔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도 쉬이 해냈다. 옆에서 지켜보며 존경과 대견스런 마음이 들었다. 원체 무어든 잘 해내는 이라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글이란게 서로에게 얼마나 두려운 매체이자 존재이자 예술인지 떠들던 시간들을 생각하면 놀랍기도 하다. ‘누군가’를 바라보면 바라보고 있던 ‘내'가 보인다. 이젠 ‘서로' 가 아니라 ‘나’ 만 여전히 글과 거리를 두고 있다. 시간은 심하게 순항중인데 혼자 지하선실 책상에 앉아 멈춰있는 느낌이다. 맘 한켠에 가득차있던 욕구에너지는 점차 줄어들고 후회에너지는 무한대로 증가중이다. 욕구가 줄어들수록 실천도 멀어진다. ‘그 때’ 하지 못한 과거의 나를 원망하며 현재의 나를 용서한다. 책을 읽고 정리하고자 시작했던 블로그를 놓아버린지 반년이 지나버렸다. 하필 마지막으로 정리하다만 책이 단편소설집이다. 독서모임에서 언제 읽었는지 까먹어버린채 바쁘다는 (세상에서 제일 잦고 거짓된) 핑계로 독서모임조차 드물게 하고 있다. 지금도 짧은 이야기든 낙서든 미간을 찌푸리며 몰입하는 이 옆에 앉아 있다. 내 손에 가로로 치켜들린 폰화면 속 유튜브 로고가 보인다. 노답...

갑갑해하는 부분에 대해 얘기를 듣자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 떠올랐다. 소설쓰기를 시작한 이에게 꼰대답게 하찮은 도움을 주려다 문득 좋은 레퍼런스로 강화길 작가의 <음복>이 생각나서다. 

어쨌든 독서모임에서 이 책을 읽긴 했는데 언제인지 모르겠다. 함께 책을 읽는 척하던 우리 모임 친구들은 잘 지내고 있는지. 여전히 시간은 순항중이다.

 

 


<제 11회 젊은 작가상 수상집> 강화길 외 


 

 


<음복> 강화길


 

 

(생략) 이사를 간 후 할머니의 치매 증세가 약간 심해진 것이다. 전에는 식구들 얼굴을 헷갈려하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뭘 묻든 맥락에 전혀 관계 없는 동문서답을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모든 대답은 한때 그녀가 열심히 봤던 일일 드라마의 내용이었다.

"그런데 애는 안 낳아?” "네?” 느닷없는 질문에 정신이 들었다. 아마 그날 내가 가장 많이 반복한 말이었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몰라서 되묻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 알아들은 바람에 순간적으로 튀어나오는 말.

네?

그러나 고모는, 지금 생각하면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한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내가 답답하다는 듯 천천히 또박또박 다시 말해주었다.

“아기 말이야, 아기. 안 낳아?" 바로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사람이구나. 다른 식구들의 신경을 긁어대는 인간, 미움받을 소리를 잔뜩 늘어놓고 (중략)

강화길 | 음복(飮福) 11

 

<음복>을 읽으며 처음 느꼈던 점은 영화를 보는 듯한 읽힘이다. 필력이 워낙 후져서 뭐라 표현해야될지 모르겠다. 할머니에 대한 묘사를 자연스레 읽다 갑자기 다가온 고모의 목소리. 실제 나의 친할머니와 비교상상을 하며 머릿속에서 그리던 소설 속 할머니를 차마 벗어나기 전에 마치 내 옆에서 고모가 실제로 나를 부르는 느낌이었다. 

“민아 니도 결혼해야 될낀데…” “에휴 내 죽기전에 민아 결혼은 보고 갈랑가…” 등...ㅎㅎ…;;

‘아기 안 낳아?’ 가 콘텐츠 시장에서 트렌드로 자리매김한지 벌써 몇년전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나 식상할 수 있는 대사가 순식간에 묘한 서스펜스와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글을 쓰는 건 연출을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구나… 싶었다.

 


 

시아버지가 제사상 앞에 나가 잔에 술을 부었다. 그리고 두 번 절했다. 이어 온 식구가 함께 절을 했다. 두번째 절을 하고 고개를 숙였을 때, 나는 곧장 일어나려 했지만 아무도 움직이지 않아 머쓱 한 기분으로 고개를 들었다 내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이제 끝났다. 싶었는데 시아버지가 남편을 불렀다. 귀에 대고 무슨 말을 속삭였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듯했다. 나는 남편이 시아버지처럼 잔에 술을 붓고 두 번 절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어 시아버지가 제문을 낭독했다. 가락을 붙여 한자의 음을 읽는 것이었고, 당연히 나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그런데 시아버지의 목소리를 길게 들어보는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활발한 시어머니와 달리 그는 늘 과묵했고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결혼식 날 남편이 큰절을 올리지 않은 걸 두고 잠시 잔소리를 했을 때 딱 한 번 모두의 시선을 받았을 뿐이었다.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멈췄다. 이제 정말 끝난 건가. 시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세나도 인사드려야지.”

"네?” 

잠시 나는 일부러 그 자리에 버티고 섰다. 시어머니의 반대를 기다렸던 것이다. 하지만 시어머니는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중략)

강화길 | 음복(飮福) 21

 

흥분될 정도로 재밌는 부분이었다. 세상 익숙하고 지겹고 허투루 넘길 법한 소재로 한 문단을 가득 메울 묘사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했기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재밌었다. ‘재미'라는 단어가 적합한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나는 ‘경상도'에서 ‘한국 남자'로 태어난 ‘장남'이다. 섣부르게 판단해도 될만한 그런 ‘경상도 한국 남자' 다. 갓난아기 시절부터 매년 명절마다 큰집에 가서 차례를 경험하고 외갓집 제사도 참석했다.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매년 집에서 제사를 지냈으며 정기적으로 엄마와 함께 야간초과근무(엄마에 비하면 근무량, 시급 둘다 한참 모자란 알바수준)를 해왔다. 

제사는 제사(본 행사)와 제사준비(사전 행사)로 나뉜다. 제사준비는 장보기, 청소하기, 요리하기 등 따지면 대략 하루종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그리고 본 행사인 제사에 들어간다. 제사는 1차 ‘조상님께 인사드리고 한잔올리기’와 2차 ‘조상님 식사’, 3차 ‘조상님 배웅하기' 까지 3부에 걸쳐 진행되고 대략 30-40분 정도 소요된다.

우리집, 큰집, 외갓집 등 주요 친인척집의 제사는 엄마를 포함 여자들은 본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다. 참석하지 않다는 표현보다 주전이 아닌 벤치에 앉아있는 서브역할이라고 보는게 맞을 듯 하다. 엄마는 3부 ‘조상님 배웅하기' 코너에서 가끔 부엌에 계시다가 나와서 ‘음복'을 하셨는데 위 소설을 읽다가 갑자기 생각난게 있다. 아빠가 “엄마도 인사 하라캐라” 라고 말하면 내가 엄마에게 “엄마 인사하시래요" 라고 전하고 그러면 엄마가 항상

“나도?” 

라고 무심하게 뱉으며 제사상 앞으로 오던 모습이 떠올랐다! 물론 위 상황과는 다른 이야기이다. 엄마는 여러 의미로 “나도?” 라고 말했을 것이다. 첫째는 이미 벤치에 앉아잇는 것이 익숙해서다. 나보다 더 오랜시간 제사를 학습하셨으니 옳던 그르던 여자는 부엌에서 준비하고 대기하는 역할을 맡는 것이라 충분히 체득하셨을테니 말이다. ‘나는 안하는 거라 알고 있어서 하려니 어색한데...ㅎㅎ;’ 같은 느낌이랄까?

둘째로 긍정의 ‘나도?’ 였을 것 같다. 항상 봐오던 엄마는 누구보다 책임감있고 자기 소신을 밝힐 줄 아는 멋진 분이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로 제사준비를 담당하는 실무자 겸 책임자로서 인정받아야 하고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계셨을거다. 그렇기에 ‘아 이제 내차례인가’ 라는 마음을 숨기는 차원의 ‘나도?’ 라고 말하신게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의미는 ‘나도? = 내가 왜?’ 가 아닐까 싶다. 엄마는 세상을 살며 거부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버티며 살아왔다. 그 중 하나가 제사일테다. 아마 많은 이들이 그럴텐데 제사를 무조건 하라니까 우격다짐식으로 의미나 필요성, 중요성을 납득한다. 그치만 항상 사전행사만 도맡으며 피도 안섞인 사람들을 뒷바라지하란다. 매우 흠터레스팅한 부분이다. 제사는 과연 의미를 새길만한 중요한 의식이라고 온전히, 당당히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있는 걸까?

 


 

(중략) 그는 그 요리를 떨떠름하게 대했다. 그러면서도 몇 번이나 다시 만들게 하고, 매번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래서 이후 해마다 생일이면 그 요리를 먹어야 했다. 해마다 월남에서 돌아왔던 날이면 그 음식을 먹어야 했다. 그러니까 아내가 만들 수 없는 음식, 먹고 싶지 않은 음식, 먹어본 적이 없는 음식, 함께 먹을 수 없는 음식, 그 제수, 제찬, 제물, 그것을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결국 혈관이 지방으로 막혀버렸다. 터져버렸다. 죽어버렸다. 그래서 부디 제발, 이제는 꺼져버렸으면 좋겠는데, 되풀이되는 기억 속에서 귀신처럼 들러붙어 계속 나타나는 사람, 돌아왔지만 돌아오지 않은 사람. 그래. 바로 그가 내 옆에 있었다. (중략)

강화길 | 음복(飮福) 31

 

<음복>을 읽으며 가장 놀란 것은 분위기일테다. 마냥 분위기가 느껴진다기 보다는 어릴 적 제사를 지내던 경험 속 공간과 합쳐진 무대가 펼쳐진다. 독자와 제3의 스토리가 이런것인가 싶다.

조금 어두운 밝기의 형광등이 켜진 거실. 평소엔 생활하기 충분히 넓직한 공간이지만 친척들이 조금이라도 모이면 넓은 제사상까지 합쳐 조금 빽빽해지는 그런 거실. 향이 타고 남은 잿빛색으로 가득찬 으스스한 분위기 한 스푼, 부엌 조리도구 부딪히는 소리들과 혼자 떠드는 듯한 TV소리 한 스푼, 은근히 시끄럽지만 거실과 부엌을 가득채우는 공기밀도가 위에서 바벨로 누르는 것처럼 조밀하게 꽉꽉 채워져 너무 무거운 듯한 적막 한 스푼까지. 상상 속 <음복>의 공간은 위 문단 속에서 폭발적인 서스펜스로 ‘읽힘'을 뛰어넘는다.

 


 

(중략) 하지만 나는 가지 않겠다고 대답했다. 왜냐하면 나는 엄마가 우는 걸 자주 봤으니까. 외할머니가 외삼촌을 너무 사랑해서, 자신의 큰딸을 여러 번 아프게 했다는 걸 알았으니까. (중략) 그러면서도 할머니는 누군가에게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있으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몇 시간이고 떠들어댔다. 울었다. 하소연하고 속을 풀었다.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 이해해주니, 네가 나를 이해해줘야지. 그리고 다시 전화를 해서 말했다. 너 대체 앞으로 어떻게 살래? 너 때문에 내가 잠이 안 와..

그리고 엄마는 외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외삼촌의 아이들에게 말했다. 너는 성적이 어느 정도니, 친구는 있니? 살이 너무 찐 거 아니야? 운동을 해라 운동을, 응? 아직도 용돈 받니? 우리 애는 이제 독립했는데, 너는 결혼은 안 해? 남자친구는 있니?

그래. 내 엄마가 우리집의 악역이었다.

강화길 | 음복(飮福) 34

 

결국 음복은 내 이야기가 아니다. 내 곁을 지켜주는 나와 가장 가까운 이의 이야기다. 사실 살면서 ‘악역'에 대한 인식은 없었다. 모든 제사문화가 같을 수 없고 모든 집안 분위기가 같을 순 없다. 적어도 우리집은 그렇지 않다… 라고 말할 뻔!

제사는 본 행사와 사전 준비로 나뉜다. 제사상을 한번이라도 본 적이 있다면 모두가 안다. 멀쩡한 몸뚱아리로 두 번 절하는게 쓰임의 다가 아니다. 빙구같은 미소만 짓고 있으며 그저 우쭈쭈 해주는 사람과 결혼하겠단 생각은 하지말자(나도 그러지 말자).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중략) 학기가 끝날 무렵, 나도 에세이를 발표했다. 통근이라는 제목의, 내가 은행에 다니던 시절 걸어다니던 통근 길에 대한 글이었다. 나는 생각이나 판단을 최대한 줄이고, 통근 길에 내 눈에 보이던 것들, 소리, 냄새에 대해 묘사하는 방식으로 글을 써나갔다. 빛에 따라서, 계절에 따라서, 혹은 내 마음 상태에 따라서 그 거리가 어떻게 다르게 보였는지 묘사했다. 외벽에 직사각형 타일을 붙여 마감한 건물, 아침이나 저녁이나 셔터가 내려가 있던 철물점, 화분을 종류별로 가게 앞에 내다놓은 백반집, 버스 정류장 옆의 작은 복권 판매소 같은 풍경들을 그렸다. 글의 후반부에서 나는 그 길에서 사라진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비어버린 건물들, 비어버린 상가들에 대해서.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내가 궁금한 건 오로지 그것 뿐이 었다고,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 문장을 반복해서 썼다. 발표가 끝나자 글의 구성과 문법상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 이어졌다.

최은영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3

 

언제부턴가 진지해지는 내 모습이 싫었다. 남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하는게 무서웠다. 어느 무리에서든 산통깨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 고민의 지점이 외부로 드러나지 않았으면 한다. 왜 이런 맘이 든걸까?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일까? 미움받을 용기가 부족해서일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고 싶어하는 맘인가? 글쎄다. 잘 모르겠다. 여튼 그게 중요한건 아니고

나이가 스멀스멀 찰수록 하고 싶은 얘기는 속으로 쌓여만 가고 들어줄 사람 찾는 건 어렵다. 더군다나 유-머라고는 전생에 묻어두고 온 몹쓸 인간(나)이라면 더욱 입단속 해야한다. 조금 더 보태서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고 머가리에 든 것도 없으면서 똑똑해지고 싶은 욕구만 그득한 인간(나)이라면 그냥 나가리다.

그런데 어쩌겠나, 이게 나인걸?(나쟈냐 나쟈나 >_<) 결국 고민은 고민의 꼬리를 물고 날 따라와 날 벗기고 굶기고 내 앞길을 망치고 하아… 여튼 그렇게 계속 고민하고 생각한다. 고민을 하면 해결할 노력을 해야하는데 이게 게으르니까 그냥 세상에 정답은 없구나 하고 모든걸 인정하자! 라고 되뇌다가

스-윽 (멜로 영화 주인공이 가을바람부는 호수공원 벤치에 앉아서 책을 읽다 고개를 들며 생각에 빠지는 표정을 마치 나도 하고 있는냥) 주변을 둘러본다. 저건 왜 저럴까, 저게 저기 있구나 등등 허튼 관찰인지 상상인지 망상인지 그런 걸 해본다. 근데 또 그 순간에도 고민을 하고 생각을 한다. 쓸데없는 그런 생각들을 말이다. 근데 이게 또 나름 머릿속에서 똥이라도 ‘생산은 생산' 이니까 뭔가 아깝다. 기어코 기록하고 싶은 맘까지... 여튼 그렇다. 위 작품의 화자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우린 쓰는 행위가 필요하다. 그래도 종이 아까운건 사실. 종이가 아니라 디지털이니까 비트(binary digit) 아깝다. 아니, 전기가 제일 아까운거구나.

 


 

그녀는 그 자리에서 그간 내가 제출한 에세이들에 대해 좋은 평을 했다. 명료하게 자기 생각을 보여주는 글도 있지만, 한쪽으로 비켜서서 응시하는 글도 있으며, 어떤 방식이 더 좋은 것인지는 분명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느냐에 휘둘리느라 자기 목소리를 잃어서는 안 된다고 그녀는 내게 넌지시 말했다. 하나의 글을 놓고 여러 명이 부족한 부분을 중심으로 지적하는 식의 수업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혼잣말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나는 그런 말을 하며 책 모서리를 만지작거리는 그녀 의 기다란 손가락을 바라봤다.

그녀는 기말고사 주간에 같이 영화를 보자고 했다. 출석 체크는 하지 않을 거고, 같이 영화를 볼 사람만 나오라고 했다. 극장 앞에 가보니 그녀를 포함한 여섯 명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극장 가운데 열에 나란히 앉아서 영화를 봤다. 극장에서 나오자 어두운 거리의 노점 불빛이 보였고, 밤 굽는 냄새, 오징어 굽는 냄새가 났다. 우리는 그녀를 따라 극장에서 가까운 닭갈비 집에 갔다. 일곱 명이 다닥 다닥 붙어앉아 먹을 수 있는 곳이었다. 연말이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금요일 밤이어서 우리는 밖에서 잠시 기다리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나눴다.

은근한 우애가 느껴졌던 밤으로 기억한다. 우리는 한 학기 동안 수업에서 느꼈던 마음을 공유했다. 겉으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지적인 자극을 주는 젊은 여자 선생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그들 역시 나처럼 좋은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았다. (중략)

최은영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79



뭔가 용산이나 종로가 떠오르는 에피소드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용산 아이파크몰 맞은편 포장마차 촌이 떠오르기도 하고 종로 서울극장 주변 포차거리가 생각도 난다. 어느정도 꼰대궤도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그런 곳들 말이다. 어떻게 보면 K-문화 중 대표격인 공간들이다. 이젠 서울에서는 보기 힘들지만 전국적으로 따지면 주황색 방수포로 메워진 거리를 종종 찾을 수 있다. 

솜, 오리털, 거위털 등으로 빵빵하게 부푼 점퍼를 걸치고 옹기종기 파랗고 빨간 네모난 플라스틱의자에 비집고 앉아있다. 사실 그렇게 비좁지 않은데 워낙 두꺼운 잠바를 입고 있다보니 다닥다닥붙어있는 느낌을 준다. 어찌됐든 입김과 담배연기, 음식연기가 섞여 소주 쫄쫄쫄쫄 자 한잔하자 수고했고잉 꿀꺽 크아ㅏㅏ

대충 이런느낌의 공간. 

추운 겨울과 잘어울리는 K-문화의 대표적인 공간들을 사랑했다. 사랑했다기보다는 그저 무리와 함께 그 문화를 즐기는 1인이었다. 남들과 수다떨기를 좋아했고 남욕하는게 재밌었다. 주변사람들과 함께 한잔 기울이며 나눈 시간들은 20대 꽤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좋았던 시간이라기엔 돌이켜보면 너무 별로인 내 모습만 떠오른다. 성공한 사람들 얘기엔 딴지를 걸고 힘든 사람들 얘기엔 괜한 핀잔을 주구장창해댔다. 나뿐 아니라 무리 전체가 그런느낌이었다.

이젠 내 목소린 사라지고 남의 목소린 실속없이 증발해버리는 소세지 없는 핫도그 같은 상태에서 정말 그리운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흐규흐규...

 


 

십 년 전의 내 눈에는 누구보다도 똑똑하고 강해 보였던 그녀가 어디에도 자리잡지 못하고, 글이나 공부와 무관한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사실이 때로는 나를 얼어붙게 한다. 나는 나아갈 수 있을까. 사라지지 않을 수 있을까. 머물렀던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떠난, 떠나게 된 숱한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렇게 사라질까. 이 질문에 나는 온전한 긍정도, 온전한 부정도 할 수 없다. 나는 불안하지 않았던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을 하고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라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언제나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 나는 그녀의 문장에 밑줄을 긋고, 그녀의 언어가 나의 마음을 설명하는 경험을 했다. 나도, 더 가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는 막연하게나마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던 것 같다. 나와 닮은 누군가가 등불을 들고 내 앞에서 걸어주고, 내가 발을 디딜 곳이 허공이 아니라는 사실만이라도 알려주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사라지지 않고 계속 나아갈 수 있다는 걸 알려주는 빛, 그런 빛을 좇고 싶었는지 모른다.

최은영 |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86

 

감동 그 자체. 최은영 작가의 소설은 때론 과하게 감동을 메긴다. 가끔 정신을 놓고 읽으면 버거운 진지함을 품고 있는 느낌도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슬프고 행복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기들과 목소리는 정말 어마무시한 능력인 것 같다. 관념에 찌들어버린 마음은 사라져버린 사람들 속에서 공감을 찾는다. 세상 게으르고 산만하고 나몰라라 버려진 내 자신의 모습에 끙끙 앓으며 행복해지지 못하는 나 자신이 미울때, 그럴 때마다 용기를 주는 한줄기 빛 혹은 볕 같은 글들은 일종의 약이었다. 끊을 수 없는 마약 같기도 하고 고통을 줄여주는 현대의학의 결정체 같기도 하다. 적어도 지금 이렇게 두드릴 수 있음으로 나를 유예하고 위로하는 순간을 맞닥들이게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하다. 물론 그만큼 밉지 않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뭐, 여튼 그렇다.

 


아직 정리중... 읽은지 하도 오래되어서 이제 잘 기억이 안난다...ㅠ 다시 읽어야 겠다...

댓글
공지사항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Total
Today
Yesterday
링크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