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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의 지구사> 캐럴 헬스토스키Carol Helstosky

생각은미천하고살은찐다 2020. 11. 9. 20:03

#피자의지구사 #캐롤헬스토스키 #신촌저녁독서모임

 

*읽은 뒤 기록하고 싶은 구절과 감상을 적습니다. 책에 대한 설명은 두서가 없습니다.

 

 

 

빌린 책이라 많이 낡았다. 총 231페이지, 맨들맨들한 재질의 표지, 양장 스타일이지만 가벼운 편이다. (개인적으로 끌리는 디자인은 아ㄴ...)

 

 

문송합니다만, 왜 지구는 둥글까? 빅뱅이 암소소리 벗 알러뷰 다 거짓말 같은 존재가 되기도 한참 전에  지구가 빅뱅으로 탄생했다는데 그 때도 둥글둥글 했을까? 태양도 지구도 달도 모두 처음부터 동그랗게 태어났을까? 동그랗다는 건 뭘까? 한자로는 ‘구' 라고 되어 있는뎅, 뭔가 머릿 속에 그려보면… 입모양이 떠오른다. 대왕 두꺼운 입술이 천천히 움직이며 ‘구' 를 발음할 때 생기는 블랙홀처럼 깊고 어두운 구멍말이다. 끝이 보이지 않는,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거 같은 그런 무한함.

‘구'에 대한 개소리를 조금만 더 하자면 완벽한 곡선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다. 임의의 점 어디를 찍더라도 시작과 끝이 되고 반대로 시작과 끝이 없는 형태. 무한한 느낌이다. 문득 과거 유행한 게임이 떠오른다. 바로 소닉Sonic이다. 갓겜 중 하나였던 소닉에서 정말정말정말정말 큰 황금색 링(?)을 먹으면 보너스 스테이지가 나오는데(Sonic the Hedgehog 3 - All 7 Chaos Emeralds) 바로 그 스테이지 느낌이다.

그래도 내 생각에 이걸 안다고 꼰 까진 아닐듯...?

솔직히 게임에 대한 재능이 바닥을 파고 지하세계수준이라 보너스 판을 해봤자 나에게 아무런 득도 없었다. 그치만 그래도 그 크고 영롱한 링을 만났을 땐 기분이 좋다. 뭔가 맛있게 생기기도 했다. 한입 Ang 베어물고 싶은 도너츠 같이 말이다. 도너츠 하니 떠오르는게 미국 도시들은 각 지역을 대표하는 도너츠 가게가 있다. 포틀랜드의 Voodoo, 시애틀의 Top Pot 이라던지… 여튼 몇군데 안 가봤지만 어찌나 달고 맛있던지 잊을 수 없는 추억의 맛이다. 도너츠만 먹으면 질린다고? 그럴 땐 핫도그를 먹어야 한다. 근-본- 단짠조합으로 세상 제일의 자극이 입안 가득 퍼진다. 역시 천조국 클라쓰... 아, 하나 빠뜨렸다. 핫도그 먹고 - 도너츠랑 커피한잔 - 그리고 집에서 피자. 피자가 비록 이태리 음식이지만 솔직히 가슴에 손을 얹고 퐉스(?) 아메리카나가 먼저 떠오르지 않는가? 이태리(유럽)뿐 아니라 아메리카까지 섭렵한 피자는 오대양 육대주의 반을 지배한 음식이다. 그야말로 납작한 (반)지구다.

 

*모임은 5월 26일 예정이었으나 뭔가 이상하지만 당연히 모두가 불참한 관계로 취소되었다. 하지만 다음 주로 미루는 것에 동의하여 6월 2일에 다큐 <이탈리아 키친 : 음식의 이민사>와 함께 독서모임이 진행되었다. 총 14중에 4명이 참석했다능… 그래도 당시 잠잠해진 코로나에게 감사를...

 


<피자의 지구사> 캐롤 헬스토스키 Carol Helstosky



1. 역사 수업 한 판 피자의 출발점, 이탈리아


 

(생략) 18세기 중엽에 이르면 대 다수 피자가게들은 손님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서 먹을 수 있도록 탁자를 놓았다. 이런 피자가게들은 나폴리에 주둔해 있던 스페인 병사들에게 인기를 끌었지만, 그래도 피자는 집에 가져가서 먹거나 아니면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먹는 경우가 더 흔했다. 예를 들어 어부들은 아침에 피자로 주린 배를 채웠는데,(중략)

하지만 피자를 가장 많이 먹은 계층은 나폴리의 빈민들로, 그들은 노점에서 피자를 사서 길거리에서 먹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피자는 평일에 먹는 음식이었고, 마카로니는 모아둔 돈으로 일요일에 먹는 특식이었다. 오늘날 피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피자를 먹기 위해 나폴리까지 순례를 가기도 하지만, 19세 기의 여행객들은 피자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1831년 전신기를 발명한 새뮤얼 모스Samuel Morse는 피자를 다소 역겨운 지방 음식으로 묘사했다. “이루 말할 수 없이 욕지기나는 일종의 케이크.........(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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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기나는?? 같은 생소한 단어로 떠올려보는 초기 피자의 모습은 우리가 아는 피자와 꽤 거리가 먼듯하다. 특히 ‘케이크' 라고 표현 한 것을 보면 아무래도 케이크가 과거에 달랐거나, 피자가 달랐다는 뜻인데 책을 읽어보면 피자가 매우 다른 모습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치즈도 없고 토마토 소스도 없었다고 한다. 도넛 크기의 납작한 빵 위에 소금을 뿌리거나 정어리나 돼지기름을 양념한 빵이 피자였다니 유통기한이 지나면 꽤나 욕지기났을 듯 하다. 기호학에 대하여 1도 모르지만 상식선에서 생각해봐도 우리가 관용적으로 사용하는 단어는 그에 맞는 형태와 성질을 내포하고 있다. <피자의 지구사>를 읽으며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서 시작된다. 내가 쓰는 단어와 이미지의 매칭이 파괴되는 상상은 은근히 재밌당.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얼마전 출간한 김지현 작가의 <생강빵과 진저브레드>(이하 생강빵)에 나오는 소재들도 비슷한 맥락이다. <생강빵>에서 작가는 유럽문화 기반의 유명소설에 등장하는 여러 음식들이 얼마나 번역된 단어와 이질감이 있는지에 대하여 말한다. 그 중 인상적인 두 음식은 ‘젤리' 와 ‘돼지고기 파이' 이다. 젤리는 육고기에 포함된 지방과 관계가 많았으며 파이 또한 요즘같이 소비되는 디저트 음식이라고 보기엔 거리가 멀었다고 한다. 그러면 미래엔? 300년 뒤에 피자는, 핫도그는, 빈대떡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피자가 한조각 크기의 부채꼴 모양으로 쌓여 통에 담겨 있을지도 모르는 일 아닌가?


 

 

물고기들과 블랙페퍼를 뿌린 데다 다른 재료는 무엇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 하수구 악취가 풍기는 빵 쪼가리로 보인다.” 나폴리 출신을 제외한 이탈리아 사람들도 피자를 매우 낮게 평가했다. 《피노키오의 모험 The Adventures of Pinocchio》을 쓴 카를로 콜로디 Carlo Collodi(본명은 카를로 로렌치니 Carlo Lorenzini)는 피자를 본 경험담을 이렇게 적었다. “굽다가 태운 크러스트의 시커먼 색, 마늘과 앤초비의 희끄무레한 광택, 기름에 볶은 허브의 초록빛 도는 누르스름함, 여기저기 뿌려진 토마토 조각의 붉은 빛이 어우러진 피자는 노점상의 더러움에 걸맞은 오물 덩어리처럼 보인다.”

한편, 나폴리 사람들은 피자를 있는 그대로 빈민과 누더기를 걸친 라차로니의 음식으로 여겼다. 소설가 마틸데 세라오Matilde Serao는 나폴리의 삶을 그린 유명한 연대기 《나폴리 깊숙한 곳ventre di Napoli》(1883)에서 피자를 빈민들이 전통적으로 먹어온 음식이라고 설명했다. 아침 식사용의 조그만 피자 조각 하나는 겨우 1페니였으며, 아이의 점심 도시락으로는 2페니짜리 조각 하나면 충분하다고 했다. 피자 요리사는 남자들로 밤늦게까지 일했다. 그들이 “두꺼운 반죽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태우고, 그 위에 거의 날것이나 다름없는 토마토, 마늘, 후추, 오레가노를 얹어 둥그런 크러스트를 만들면 피자 노점상들이 가져다…(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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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세상 사람들 다 싫어하는 음식이 아직도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기이한 현상이겠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피자는 너무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과거엔 정말로 ‘먹고 살기 위해' 먹던 음식에 불과했지만 이젠 피노키오도 먹고 나면 ‘존맛탱구리!’ 라고 소리 칠 거 같다. 피자의 운명을 그래프로 표현하자면 변곡선은 어마무시한 우상향을 겪었다. 존버 승리일까? 마냥 ‘존버' 는 아니다. 엄청난 투자와 변화를 겪었으니까. 바야흐로 ‘大 주식의 시대' 인데 국내 전통음식들 중엔 그럴 만한 음식이 없으려나? 열심히 찾아봐야겠다. 먹는 것도 이젠 투자대상으로 보이는 세상에 난 완벽히 적응해버렸다. 근데 왜 주머니는 텅텅비었나…(완벽히 적응하지 못했으니까…)

여하튼 1페니가 현재 물가를 따지면 어느정도 일지 궁금했다. 18세기 이태리의 물가를 찾아 볼 순 없었지만 한 블로거께서 13-15세기 영국 물가에 대하여 정리한 글이 있었다! 반신반의지만 영국에서 당시 1페니는 대략 현재 원화 환율 기준 3500원 정도이며 계란 12개에 0.5페니라고 한다. (Tamerlane님 블로그(중세물가비교표))




(생략) 하지만 이탈리아 피자 신화에 따르면 귀족 가운데에서도 피자광이 있었는데, (중략) 가장 유명한 사람은 통일 이탈리아의 2대 국왕 움베르토 1세의 아내 마르게리타 여왕일 것이다. 전하는 말에 따르면 1889년 나폴리를 방문했을 때 마르게리타와 움베르토 1세는 당시 유럽 귀족들의 주식이었던 프랑스 요리에 질려 있었다 한다. 피체리아 브랜디의 피자 요리사 라파엘레 에스포시토Raffaele Esposito는 여왕이 먹을 다양한 피자를 만들라는 명을 받았다. 그는 라드(돼지기름)와 카초카발로(치즈의 한 종류), 바질을 쓴 피자와 작은 생선을 얹은 피자, 그리고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얹은 피자를 만들기로 했다. 마지막 피자는 당시 피자 알라 모차렐라 pizza alla mozzarella 라고 불렀는데, 여왕이 그 피자를 가장 마음에 들어한 이후 마르게리타 피자로 이름이 바뀌었다. 피체리아 브랜디는 1889년 6월에 왕가의 주방장 갈리 카밀로 Galli Camillo가 서명한 감사장을 아직도 전시하고 있으며, (중략) 여왕이 토마토와 모차렐라, 바질을 얹은 피자를 택했다는 것은 이탈리아 민족주의자들에게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게다가 마르게리타 피자의 색은 이탈리아 국기의 색과 똑같다. 또한 그 전설은 음식의 민족주의culinary nationalism 개념과도 잘 맞아떨어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마르게리타 피자가 오늘날 정부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는 두 종류의 진정한 나폴리 피자 가운데 하나라고 자랑스럽게 주장한다.

마르게리타 피자 이야기의 신데렐라적 측면도 무시할 수 없다. 소박한 요리가 여왕의 총애를 받는 요리가 되었고, 이어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으로 손꼽히게 되었던 것이다. 요리의 약자인 동시에 가장 섬세한 입맛을 가진 사람들조차 즐길 수 있는 놀랍도록 맛있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피자는 사회적 평등화 기제 역할을 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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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게리따 여왕은 피자를 좋아한 이유로 피자이름이 되었다. 예전에 기타노 타케시의 <기쿠지로의 여름>을 본 뒤 왜 꼬마이름인 ‘마사오의 여름' 이 아니라 ‘기쿠지로의 여름' 인지 의문이 든 적이 있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이 여간 대단한 인물이 아니란 건 여러모로(?) 인정하지만 마사오의 시점이 더 중요한 영화였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유명한 O.S.T. 조차도 마사오랑 어울리지 않는가?

상상하기 나름이지만 마르게리따 여왕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보다 마르게리따 피자의 창시자 라파엘레 에스포시토Raffaele Esposito가 여왕을 위해 어떤 피자를 만들지 고심하는 상상이 더 재밌지 않은가?

시식자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요리라는 것이 탐탁치만은 않다. 뭐 세상이치가 그러하니 어쩌겠는가 싶긴 하다만, 제작보다는 투자/소비/유통/배급이 더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씁쓸함이 보태져서 갑자기 급 꿀꿀해진다. 꿀꿀거리며 배가 고파온다. 저녁먹을 시간이 되어서 그런가 보다. 그래도 여왕님 덕분에 피자가 죽다 살아난 격이니 남다른 입맛을 가진 여왕의 취향에 고마워해야할지도 모르겟다. 언젠가 에스포시토의 레스토랑에서 마르게리따 피자를 먹을 날을 고대하며 피제리아 브랜디의 위치를 기록해 둬야겠다.

(피자리아 브랜디 위치)




빈민문화의 상징임을 감안할 때, 예나 지금이나 좋은 피자의 핵심은 단순성이다.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적으로 재료를 잔뜩 올린 기이한 피자들은 이런 점에서 신성 모독적이다. 게다가 나폴리에서 피자의 역사가 우리에게 빈민들이 맨손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낸 과정을 말해준다면, 피자는 단조로움에 맞서 다양성을 추구하고, 부족한 식재료를 극복하고 좋은 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모든 이탈리아 사람들의 역사를 대표한다. 따라서 이탈리아 사람들의 모욕감도 이해할 만하다. 피자 한 판은 곧 역사 수업 한 판과 같다. 게다가 피자를 만드는 데 드는 창의성과 단순성은, 가령 규칙과 섬세함을 빼면 시체라 할 프랑스 요 리와 달리 이탈리아 요리인 피자를 가르는 보증 수표다. 그리고 이탈리아인의 이주와 디아스포라diaspora 를 다루는 수많은 역사가가 지적하듯이 이탈리아의 국가 건설은 수많은 이탈리아 사람이 국내와 해외를 오가며 국가의 안팎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이탈리아의 정체성을 만들고 재구성하는 자기반사reflexive 과정을 통해 이루어졌다. 프랑코 라 체클라 Franco La Cecla 가 주장했듯이 피자는 이탈리아의 역사와 문화를 보는 두 가지 핵심 관점과 관련이 있다.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이탈리아 내에서 이탈리아 음식의 국민화 nationalization이고, 다른 하나는 이탈리아가 지향하는 '상상의 공동체 imagined community'로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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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 관련된 유명한 심리학자 찰스 스펜서의 저서 <왜 맛있을까>에서는 우리가 느끼는 맛은 마냥 주관적이지는 않다라고 이야기한다. 뭐, 당연한 얘기긴 하지만 다양한 요리실험을 통해 신체에 나타나는 화학적 반응을 맛과 관련하여 해석해놓은 방대한 연구데이터를 읽다보면 작가에 대한 리스풱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는 음식을 더 맛있게 느끼기 위한 실험을 여러가지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그 중 책에 나온 몇몇 요리사들은 매우 실험적인 요리를 만드는 레스토랑에서 일한다. 특이한 실험요리를 통해 신체의 동시다발적인 감각변화와 화학작용을 수치, 지표화하여 결과를 도출한다. 실험맞춤형 요리는 실험을 위해 새로 개발하는 만큼 기존의 요리들과 매우 다른 맛과 모습을 띄는 경우들이 있다. 결국 <피자의 지구사>를 읽기 전에는 피자의 원형을 상상도 못했던 것과 같이 실험요리 자체를 과거 우리가 익히 알던 음식종류와 매칭하는 것은 매우 난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요리의 이름으로 상응하거나 정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문물은 근원적으로 기존의 것보다 더 나음을 추구하는 경우가 있다. 일부 실험요리들도 과거의 맛과 다르거나 새롭거나 혹은 더 나은 맛을 쫓아 탄생한다.

그렇기에 그런 요리들은 ‘탄생비화' 부터 과거 음식들과는 차원이 다른 ‘고급성'을 가진다. 흔히 재벌3세와 개천에서 용난 사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야기에서 자주 쓰이는 대사 “너랑 그 사람은 그냥 ‘다른' 사람이라니까!” 같은 느낌이다.

그렇다면 탄생의 차이는 정체성의 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까? 피자가 애초에 가질 수 없는 ‘맛' 이 있을까?

음식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내가 너무 음식을 과하게 생각하는 것인가봉가?

그래도 한권의 책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정체성일 수도 있겠다. 피자가 가진 복잡하고도 재밌는 사연들은 어쩌면 ‘더 맛있는 실험요리' 들에 비해 훨씬 큰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을까?

피자의 경우처럼 음식의 맛은 결코 ‘맛' 그 자체만으로 판단되지 않는다. 그게 참 신기하다. 일부 나폴리 사람들은 갖은 토핑이 들어있는 미국식 피자를 먹으며 “이건 피자가 아니지!” 라고 외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 피자가 비록 나폴리 원조피자보다 맛있을지라도 말이다. 흠… 한편으론 동족 사이에서도 온갖 멸시를 받던 음식이 여왕을 위해 만든 피자 하나로 평이 뒤바뀌는것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민족주의의 배타성은 워낙 지킬앤하이드 같기때문에 뭐… 쩝.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끄트머리에 사는 소시민으로서 동네 피자집에서 파는 불고기 콤비네이션 피자(+치즈 크러스트)는 참 맛있다고 생각한다.


 


2. 피자 아메리카나 피자의 두 번째 고향, 미국


 

 

이는 새로운 미국의 취미생활을 부추기기도 했다. 즉 장난으로 엉뚱한 사람들 앞으로 피자 배달을(가끔은 몇 판이나) 주문하는 것이었다. (중략) 베트남 전쟁이 최고조였던 시기에 미국 육군 정보부 장교들이 일리노이 주 윌멧에 사는 반전운동 용의자들에게 피자 수십 판을 보 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한편, 교육위원회 회장을 지낸 회계사인 그 반전 용의자는 대학생 아들들이 친구들과 함께 먹으려고 피자를 주문한 것이라고 생각했을 뿐 자신이 그런 장난의 대상자인 줄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피자가 오면 묻지도 않고 지갑에 손을 찔러 넣으니까 말이다. 공식적으로는 장난이 아니지만 피자 배달에 가명을 사용하는 것이 전국적인 습관이 되었다. (중략) 실명을 쓰고 싶어하지 않는 고객들이 가장 자주 쓰는 가명은 '패리스 힐턴' 이었다.

피자 배달과 냉동 피자가 발전하여 미국 내 전 지역에서는 피자 소비가 늘고 피자의 인기도 전국적으로 널리 퍼졌다. 피자는 배달 음식의 첫 번째로 꼽히면서 간편한 식사나 간식거리, 또는 파티 음식 주문을 전보다도 더 간편하게 만들었다. 1970년 무렵 피자는 20대 미국 국민이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 되었고, 나머지 연령대에서는 햄버거와 치즈버거에 뒤이어 2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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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하다. ‘반전운동 용의자' 는 무슨 용의자 인걸까… 사실 피자 수십판을 반전운동가에게 보낸 군인들의 행동은 어떤 ‘화해의 제스처' 가 아니었을까? 끝까지 몰랐으면 반전운동 용의자(?)는 몇날 몇일을 맛있게 먹었을테지. 냉동피자의 발전을 보아도 알 수 있지만 피자는 사실 식어도 맛있고 차가워도 맛있다!(?)

그나저나 패리스 힐튼은 젊은 시절 자신의 패기를 후회하려나. 덕분에 힐튼호텔과 배달업계가 이득을 보았으려나. 코로나로 호텔업계가 위기에 처한 가운데 패리스힐튼이 지금 다시 예능계로 돌아온다면 숙박업계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나아가 킴 카디시안과 함께 출연한다면 돌아온 블루칩 가즈아~




(생략) 어떤 뚜렷한 지리적 기원이나 문화적 기원이 없는 것도 있다. 규격화된 피자는 규격화되었다는 점만 제외하면 아무 제한 조건도 없다. 이것은 피자를 접하게 되면 피자를 가지고 실험을 해보려는 욕구에 저항하지 못하는 고객들에게 창조의 충동을 불러일으켰다.

피자 전통주의자들은 이런 새로운 피자들 - 오징어 먹물 피자, 마요네즈를 뿌린 피자, 스위트콘 피자 - 이 피자 제조라는 예술의 퇴화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탈리아 평론가들은 특히 복합문화적 피자라는 개념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다. 1장에서 살펴보았듯이 그들은 자신들이 요리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바를 방어하고 보호하기 위해 많은 수고를 감수해왔다. 그리고 정부가 정통 나폴리 피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해도 일부 이탈리아 사람들은 조바심을 내며 피자의 최신 유행(이른바 피자 콘이라는 것이 나타난 순간에)을 매도한다.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보니 피자의 권력이양은 문학과 언론에서 자주 은유로 쓰이면서 패스트푸드 분야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서글픈 상황을 나타내는 기본 증거로 제시되었다. 이탈리아를 비롯한 전 세계의 피자광들은 혼이 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규격화된 피자를 매도한다. 이윤을 위해 만든 것이지 피자 제조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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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격화된 피자란 미국 프랜차이즈식 피자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피자헛과 도미노 피자가 있다. 독서모임 때도 조금 놀랬지만 몇몇은 ‘피자' 하면 미국이 떠오른다고 한다. 사실 이태리식 피자에 대한 이해가 1도 없는 나 자신이지만 그래도 ‘피자는 이태리꺼' 라고 생각했는데 다 그렇진 않은 듯 하다. 모두가 무시하던 원형(原型)의 피자를 먹던 나폴리사람들은 지금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는 나폴리시민들이 아니다. 현대나폴리인들은 여왕의 입을 거쳐 1단계 진화(?)한 피자를 즐기는 사람들 일테다. 하지만 민족주의나 공동체의식의 작동법은 대부분 비슷하다. 붓싼 출신인 나도 어떤 느낌인지 알 듯하다. 나도 그러고 살았고 여전히 비슷한 마인드로 살고 있으니까.

나는 부산에서 태어났다. 남포동이 최고의 번화가이던 시절. 해운대 신시가지라는 대규모 주거단지가 생기기도 전부터 부산에서 살아왔다. 부산은 자존심의 도시다. 영화 <친구>, <바람> 등에서 볼 수 있듯 별에별 꼴사나운 짓거리를 영화화 할만큼 부산(남자)사람들만의 특징이 있다. 나에게도 비슷한 것이 있었다. 학창시절 먹던 돼지국밥이 그런 존재였다. 성인이 되어서 서울 깍쟁이들에게 “마! 니 국밥 무우밧나(너 (돼지)국밥 먹어보았니)!” 라고 물어보면 다들 대수롭지 않게 순대국밥을 얘기한다. 그러면 바아아아로(바로) 콧방귀를 끼면서 ‘그거슨 국밥이 아니지!’ 를 외친다. 그러고는 마땅치 않은 표정을 살짝 지어주며 순대국밥 먹으러 고고씽. 굳이 왜 돼지국밥에 자부심을 느끼는 걸까. 당연히 ‘맛'의 문제이지만 ‘맛' 만의 문제가 아닌 그런 괴상한 감정이다. 심지어 콩나물 국밥도 경쟁상대가 될 때가 있다.

 그러다 어느 날, 친구집 주변에 있는 순댓국집을 갔다. 한입 뜨는 순간 너무 맛있었다. 지난날 내가 먹은 모든 술이 깨는 듯한 시원함과 동시에 쫄깃 쫄깃한 순대와 부속고기들의 조화로운 맛이 경이로운 그런 순간이었다. 하지만 인정할 수 없었다. 나에게 국밥은 돼지국밥이 근본이니까! 그 날 아마 난 순대국밥 10분컷에 성공했을 듯 하다. 그 이후에도 돼지국밥 자부심은 오래 갔지만 이젠 순댓국이 더 입에 맞는 느낌이다(이건 비밀이다). 여하튼 비록 미국 시카고 피자가 너무 맛있어도 인정할 수 없는 그런 마인드, ‘돈이 없지 가오가 없'을 순 없는 그런 마인드. 키보드 두들기다 보니 문득 이게 이렇게 장황하게 적을 얘긴가 싶다. ㅈㅅ




피자가 워낙 변화무쌍하다 보니 진정한 피자란 이런 것이다라고 명확하게 정의 내리기 쉽지 않았다. 피자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음식이 존재하는 온 세계 곳곳에서는 그 음식을 '피자' 라고 부르려는 경향이 생겨났고, 더러는 그 새 이름 때문에 그 음식의 인기가 치솟는 경우도 있었다. 오늘날 터키에서는 라흐마 준lahmaeun 이라는 음식이 터키식 피자로 불린다. 라흐마준은 터키와 아르메니아에서, 그리고 전 세계의 터키계와 아르메니아계 이민자들에게 인기가 있다. 이것은 둥글납작한 빵(가끔은 피타빵)에 간 고기(보통 쇠고기나 양고기)를 얹은 뒤 레몬즙을 뿌리고 오이피클, 토마토, 양파, 마늘, 페퍼 등과 같은 채소를 넣어 둘둘 말아서 만든다. 라흐마준은 수천 년 전부터 있었지만 지난 수십년 사이에 더 대중적인 음식이 되었다. 터키 인구가 많이 모여 사는 유럽의 지역들에서 특히 그러했다. 예를 들어 터키식 피자는 독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길거리 패스트푸드에 속한다. 그리고 일본 팬케이크인 오코노미야키는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일본식 피자'라고 불린다. 오코노미야키는 밀가루, 물, 달걀, 양배추로 만드는 팬케이크다 (반죽에 다른 재료들을 더 넣기도 한다), 익히고 나서 그 위에 약간 달콤한 소스와 가다랑어포 (반죽의 열기 때문에 흐느적거린다), 마요네즈를 뿌린다. 또 스위트콘이나 베이컨 등의 재료를 더 얹을 수 있다. 다양한 토핑을 얹을 수 있다는 것과 조각으로 잘라 먹는 것을 보면 왜 오코노미야키가 흔히 피자라는 이름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피자 순수주의자들은 라흐마준이나 오코노미야키를 피자라고 부르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은 그것을 피자라고 부른다. 피자가 이제 어떤 보편성을 갖게 되었다는 것도 거기에 한몫 한다. 그래서 이제는 피자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점이 있는 다른 음식들이 피자로 불리거나 외국식 피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는 규격화된 피자의 성장과 새롭고 재미있는 피자를 만들려는 창조적 충동 사이에는 직접적이거나 가까운 관계는 아니라 하더라도 분명 관계가 있다. 그 하나는 최대의 피자 체인인 피자헛조차 지역시장에 맞게 기꺼이 자사 제품을 적용시키려 한다는 것이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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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파전은 한국의 피자인가? 피자 순수주의자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이거슨 국밥이 아니지!” 와 같은 말을 하겠지? 그러면 그 사람들은 각 지역 별 고유의 음식들을 피자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도 거부할까? 피자 프랜차이즈 회사들이 아무리 많은 혼합을 창조한다지만 우린 먹으면서 이미 알고 있다. 해물파전과 해물피자는 완벽하게 다르다는 것을. 불고기피자를 먹으면서 불고기를 대신할 음식으로 생각하진 않는다. 다만 저자가 바라보는 시각에서 말해보자면 그저 피자가 만들어 내는 다양성이 재밌는 현상이고 기록해둬야 할 일인건 맞다.




피자광들은 피자가 강력한 맛의 조합 때문에 인기를 얻었다고 주장할 것이고, 이탈리아 팬들은 전 세계에 퍼진 이민자들의 굳건한 기여를 강조할 것이며, 미국 팬들은 동서부 해안을 아우르는 소규모 업체들의 사업 능력을 강조할 것이고, 음모론자들은 도미노와 피자헛의 경영진들을 탓할 것이다. 아니면 알렉상드르 뒤마의 말이 맞았는지도 모른다. 피자는 우리의 필요와 아쉬움을 충족시키면서 더 광범위한 맛과 욕구의 세계를 열어주는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음식이다. 피자는 옛날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둥글납작한 빵과 토마토, 치즈 에 관해서뿐 아니라 우리 자신들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말해주는 미식척도기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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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다 읽은 뒤 그건 확실하게 느꼈다. 작가는 피자를 겁나 좋아한다는 거다. 피자를 좋아한다는 것은 아마 전세계 많은 사람들이 쉽게 수긍할 수 있는 취향이다. 하지만 피자의 맛을 통해 시작된 이야기가 사회과학서가 되는 것을 우린 마땅히 수긍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먹는 행위와 음식을 받아들임에 우린 너무 각양각색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황교익처럼 누군가는 백종원처럼 또는 누군가는 1992년 부산 초원복국집의 김기춘처럼 음식을 대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식생활을 매우 가벼이 여기는 편이다. 우리가 살다보면 대부분의 끼니는 살기위해 ‘주유' 하는 행위로 여겨지기 일쑤다.(나만 그런가?) 사실 이 책 또한 피자의 탄생과 전파에 대한 실증을 근간으로 수많은 해석에 다다른 것이기에 ‘단지 먹는’소재를 완벽히 다른 결로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자가 겪은 고민의 순간들은 나에게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새삼 내가 라면과 국밥을 먹으며 넷플릭스 한편을 더 보면 봤지 저자 같은 고민을 하진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뜬금 없지만 먹는 다는 것은 그렇게 가깝고 귀하고 사소한 것이지 싶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나는 국밥을 참 좋아한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깨달을 수 있었다. 나폴리 수많은 피자전통파들을 의아해 하거나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단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 이 책은 피자보다 중요했다. 한편으로 괴팍할 수 있는 세상의 다양한 현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며 부정적인 인식을 갖는다 하더라도 그 존재조차 부정될 수는 없다. 반대로 굳이 어색하게 인정하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내가 읽는 책과 영화는 나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르니까, 다르게 존재하는게 틀린 건 아니니까 말이다.

파파존스 피자가 얼마전 즐겨먹던 치폴레 피자를 더이상 팔지 않는다고 했다. 새로운 피자를 찾아야겠다.


 

 

아래는 재미난 라떼 이야기(부록)

(생략) 《동아일보》 1980년 11월 1일자에 실린 <식성에도 세대차>라는 기사는 그러한 사정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기사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 씨(42)는 지난 일요일 저녁 모처럼 식구들과 함께 외식을 하기로 했다. 너희들 뭘 먹고 싶니' 아빠의 물음에 중1, 국교5년 생인 남매는 미리 의논이라도 한 듯 피자요' 라고 대답. 자녀들이 끔찍이도 피자를 좋아하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자신들까지 피자로 저녁을 때울 생각은 전혀 없는 이씨와 부인 김 씨(40)는 '그럼 너희들은 길 건너 피자집에 가서 좋아하는 것 시켜 먹고 있으렴. 아빠 엄마는 횟집에 가서 저녁 먹고 너희 있는 데로 갈게' 하고 건널목에서 헤어졌다. 식사 후 피자집에 가서 계산을 한 후 자녀들을 데리고 나오면서 '어쩌면 부모자식 간에 그렇게 자연스럽게 헤어져서 따로 식사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놀랍더라고 김씨는 말했다."

이 기사는 오늘날 매우 의미 있게 읽힌다. 피자를 간식 또는 술안주 정도로 이해했던 1980년대의 30대에서 40대 주류 소비자들과 달리 그들의 자녀들은 끼니로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당시의 10대들이 주류 소비자로 자리 잡은 2010년대에 왜 이렇게 많은 피자가게가 전국에서 성업하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생략) 

특집 피자, 한국 정복의 역사 - 183





초창기 피자 노점상과 나폴리 거리. 싱기방기



영문판이 훨씬 이쁜듯 하다(물론 국내 출판사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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