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토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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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미천하고살은찐다 2019. 2. 7. 14:30


2018. 07. 10


너가 아프다고 했다. 속이 매스껍다고 그랬다. 평소 잔병치레가 은근히 있던 너라서 무언가 잘못 먹었거나 사소한 통증일거라 생각했다. 낮에 통화할 까지만 해도 머해? 라고 묻는 목소리에 아기같이 때묻지 않은 순수함을 느껴서 기분이 좋기까지 하더랬다. 우리 기준에 이른 아침인 9시에 너가 문자테러로 깨우던 장난이, 그렇게까지 우리가 신경쓸 일이 있을까 싶게 만드는 귀여움과 약간의 귀찮음이 욕조 오리가 찰랑거리는 정도로 머리 속에서 하루계획과 함께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찌됐든 아주 잠깐 그리고 약간 아쉬울 정도였으니 오늘 하루를 이렇게 키보드까지 두들기게 줄은 상상도 못했다. 


세상 제일 이기적이고 몹쓸놈답게 어느새 책과 신문은 키보드와 마우스에게 자리를 뺏기고 너를 잊을 정도로 아득히 세상을 즐기고 있는 나였다. 스타를 할까? 친구들을 만날까? 그게 뭐가 그리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뭔가 좋았던 것에 문득 지금 얼굴이 붉혀진다. 더구나 그게 끝이 아니라 스타를 즐길만큼 즐겼다는 것이 더욱 머리가 아득해지는 부분이겠다. 정말정말 적당한 그런 하루의 낭비였다. 가끔 너가 보고싶음에 아쉬움이 남고 가끔 혼자 무얼할지 고민하고 행하는 그런 하루의 낭비. 


책을 열심히 읽으려 카페에 갔다. 카페는 생각보다 한산해서 2 제일 구석 창문에 붙은 형식의 테이블에 앉을 있었다. 확실히 대학생들 방학은 방학인가보다, 그리고 급식들은 시험기간인가보다 했다. 한두살 차이는 한달동안 다른 여름을 맞이한다. 고작 한달이 여름의 시작을 바꿀 있다. 카페 창문너머 보이는 회색빛 도시는 장마장마하다. 지난달 더위는 잊혀진채로 장마는 자기어필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한해가 반도 안남았다는 그런 신호와 함께. 그새 반년을 낭비했구나. 흙과 나무를 만나지 못하는 대부분의 비들도 그렇게 아스팔트 속으로 낭비잼.


책은 너무 별로였다. 책이 정말 별로 였다는 느낄 있는 수많은 부분들을 사진으로 찍어뒀다. 너한테 보여주며 실컷 투덜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독서모임에서는 뭔가 그러지 못할 같은 기분이 드는 내용들이었기에 너와 대화를 하고 싶은 생각이 유독 더욱 크게 느껴졌다. 근데 너가 병원을 간다고 했다. 열이 많이 나서 어머니와 아주대병원 응급실을 간다고 했다. 오후의 모습이 너무 미웠다. 걱정해줄걸. 신경써줄걸. 단지 통화 고작 몇분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했나 싶음에 너무 부끄러웠다. 아프다니, 응급실이라니, 손가락은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다. 많이 아파? 열이 왜나지? 어떡해 ㅠㅠ 등등 쉴새 없이 떠들어대는 엄지 손가락은 조용한 카페에서 고성방가를 해댔다. 


그렇게 걱정이 되는건지 모르겠다. 응급실이란 단어만 들어도 호들갑인데 검사까지 한다고 하니 더욱 걱정이 되는거겠지. 게다가 티비뉴스에서나 보던 아주대병원이라니. 병원이 주는 걱정은 나에게 무지막지하게 폭력적이다. 물론 그렇다고 내가 걱정때문에 책을 읽거나 딴짓거리를 안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너가 아픈게 싫었고 너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너가 아픈데 곁에 있어주지 못하는게 너무 한심해졌다. 빗소리도 심장이 뛰는 소리도 느낌인지 모르겠는데 쿵쾅쿵쾅 귀인지 뇌인지 여튼 어딘가에 계속 때려박혔다.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비트 드랍 비트 때가 비트. , 너무 싫다. 왜이렇게 걱정이 되는거지. 그냥 진짜 평생 아프지 않게 해주고 싶은데 내가 그럴 있을까. 그러면서 잠깐 쉬는시간처럼 유튜브 한번 보고. 도파님 사랑해여! 


병원을 곱게 나와본적이 거의 없다. 갑작스런 할아버지의 주검을 바라보며 머릿속 필름지는 종합병원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중학생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의 아이고 아이고라는 한국 전통 곡소리는 생각해보니 중학교 더블케이의 <아이 고>를 좋아해서 자주 부르기도 했다. 어이없네. 슬픔도 눈물도 모르고 어벙벙하던 시기에 발인날 할아버지 영정을 들고 처음 죽음에 대해 울어보았다. 남들보다 늦은 죽음의 눈물인가. 모르겠지만 사춘기가 오지도 않았던걸로 생각되니 늦었다고 없겠지. 고등학교 아빠가 갑자기 어마무시하게 아파서 큰 병원을 거쳤다. 너무 아팠던 아빠는 1 넘게 병원신세를 졌다. 것두 중환자실에서 오랜시간을 보내며 말이다. 집에 없는 아빠의 아픔보단 매일 늦게 집으로 돌아온 엄마의 지친 얼굴과 철없고 댕청한 표정까지 전지적 시점으로 함께 기억에 남아있다.


그리고 대학 마지막 해를 남겨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얼마만에 고향집에서 보낸 방학인지 모를 방학이었다. 공부하는척 연애하는척 노는척 일하는척 , 척이란 척은 해보고 나니 남은게 효도하는 척이기에 오랜만에 내려갔다. 물론 할머니가 보고 싶기도 했다. 할머니는 어머니와 다르지 않다. 나에게 어머니가 할머니고 할머니가 어머니다 어할할어. 용돈도 주시겠지 헤헤 그저 이렇게 과거를 떠올리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작성중)